-풍류를 즐기는 정서적 정치가 엿보인다-
2018年07月25日
*WEBRONZA의 첫 시도입니다. 이 기사는 필자가 한국어와 일본어 2개국어로 집필하였습니다. 일본어판도 함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한반도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 평창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 있었다. 특히 핵무기 완성을 선언하고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를 계속해 오던 북한의 행태는 남북한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와 태평양지역 전역의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을 기점으로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무드가 조성되었다. 이는 다시 5월26일의 급작스러운 제2차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마침내 6월 12일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연결되면서, 한반도의 긴장관계는 상당히 해소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북한 한국인들은 평화에 대한 정서적 희망, 심지어 통일에 대한 꿈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 즉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 같은 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정서는 이미 남북철도를 이어 중국과 러시아와 유럽까지 달릴 꿈에 부풀어 있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정서와 그러한 정적 확신의 현상에 대해 주목해 본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예로 든 적이 있다.
"동아시아 삼국, 즉 한국, 중국, 일본을 함께 놓고 비교해 볼 요소가 많다. 세 나라의 ‘여관’(旅館)에 대해 좀 따져볼까 한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나그네가 길을 떠나 타지(他地)에 나가 머무는 처소(處所)를 ‘야도’(宿)라고 부른다. 그 뒤 ‘여관’이나 ‘온천’ 등등의 여러 파생적 명칭으로 이른바 ‘호텔’을 일러 말하지만,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오도마리’(お泊まり)이다. 이러한 여관명칭이 연유된 문화적 특징은, 가장 중심적 의의가 하루 밤 머물러 잠을 자는 데에 있다. 곧 이 잠자는 집에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여행의 풍류를 다 즐기는 공간이 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잠자리와 관련된 문화로는 일본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라고 할 수 있는 ‘온천문화’가 거기에 깊이 연이어져 있어, 철저한 ‘목욕문화’도 함께 있다. 바로 이렇게 목욕하고 잠자는 곳에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사람도 만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중국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관을 ‘반점’(飯店)이라고 부른다. 앞서의 의미정리 형태로 말하자면, 곧 밥 먹는 집에서, 잠도 자고, 술도 마시며, 사람도 만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내공’을 자랑하는 중국요리의 세계,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중국 평민문화의 ‘실속형 가치관’을 연상케 하는 문화이다. 그러고 보니, 중국여행 때마다 머물던 ‘호화대반점’(豪華大飯店)이라는 호텔 명칭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중국의 ‘밥집’은 그대로 그 여행문화의 주체적 장소가 되며, 거기에 중국문화의 ‘타산적 가치관’도 녹아 들어있다고, 억지를 부려보아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주막’(酒幕)이다. 술을 마시는 곳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며, 사람도 만난다. 술을 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로 대표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가장 좋지 않은 문화적 정서나 그러한 분위기가 아닐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술’은 꼭 ‘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거기에는 우선 예술적 지향이 깊이 함축되어 술을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를 떠나 풍류의 감성으로 세상을 본다는 낭만적 사고가 흐른다. 한국인이 길을 떠나 여행에 나서면서 전통적으로 가장 먼저 언뜻 떠올리는 나그네가 이른바 ‘방랑자 김삿갓’이다. “시 한 수에 술 한잔”이라는 ‘김삿갓’의 전승이다. ‘정처 없음’과 ‘발길 닿는 대로’ 라는 한국인의 여행 전승은 그런 문화의 반향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여행의 습속과 풍류는 한국인의 창조적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하는 또 다른 역동성의 근거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비교한 내 나름의 개인적 감상과 단순한 ‘명칭 비교’는 지엽적 문화이해일 수도 있다. 더 많은 다른 요소를 놓친 억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용도의 ‘여관의 명칭’에 서린 ‘방랑자의 정서이입’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신기하기도 한 발견이었다. 물론 이는 어느 것이 우월하고, 저급하다는 비교는 결코 아니다. 가까운 나라 ‘동일문자문화권’의 삼국에서 이런 차이가 있는 것 자체가 경이로울 뿐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와 문화 여행을 더불어 하고 나면,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서구식 호텔이나, 특히 미국의 ‘모텔문화’는 참으로 멋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강조하는 것인지도, 여행이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게 하는, 길을 멀리 가는 데 필요한, ‘가솔린 주유소’나, 심하면 ‘마구간’과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미국여행에서 자주 느끼는데, 여행은 ‘질주하는 것’이고, 모텔은 다시 달리기 위한 힘을 채우는 공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거기에는 ‘야도’(宿)도, ‘반점’(飯店)도, ‘주막’(酒幕)도 없었다."(필자의 개인 블로그 '여관의 명칭' 참조)
세대차이가 상당히 나는 남북의 두 정상이 회담 스케줄의 일환으로 이른바 '도보다리'를 산책했다. 거기는 수행원도, 통역자도 없었다. 처음에 따라붙던 기자들도 다 물렸다. 그리고 멀리서 무성영화처럼 TV카메라만 그들을 줌인 했다. 진지한 대화, 가끔 웃음과 다정한 제스처, 그리고 평화로운 새소리만 가득했다. 그곳은 한반도 최고의 대치와 긴장의 장소였다. 그들은 거기서 오랜 만남의 친구처럼 산책과 담소를 나누었다. 이 장면은 남북한의 한국인들과 세계의 사람들이 지켜보았다.
특히 한국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대화의 내용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분단 73년과 전쟁 68년의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한 한국인들의 '한'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싸우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마침내 '우리의 소원'인 '통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한민족 '한풀이'의 '세레모니'이기도 했다. 남북의 수뇌부는 그것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틱한 장면 하나로 얻을 수 있는 천배 만배의 정치적 효과는 우리가 감히 상상을 못할 수준이다. 우선 남북한은 이런 정상회담 이전에 스포츠교류와 남북단일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남북한의 연예인들이 서로 오가며 특별공연을 가졌다. 남북의 관객들은 눈물로 그들의 노래와 춤에 화답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의 정서가 이용되고 발휘된 정치학이다. 여행객이 머무는 호텔을 '주막'으로 부르며, 거기서 술 한잔에 시 한 수를 읊었던 한국인, 노래와 춤을 삶의 중심에 놓고, 지금도 세계에서 한류대중문화로 통하는 한국인에게 더욱 해당되고, 적용되는 '정서적 정치'가 지금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한중일의 접근방식이나 인식구조도 서로 다른 국민성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은 현대사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정치적 변혁과 급속한 경제적 성장동력,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의 활발한 전개도 이러한 정서적 기반에서 그 '다이나미즘'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연인원 수천 만 명이 참여한 이른바 '촛불혁명'을 통한 정권교체, 반대로 남북 화해 무드에 대한 반공보수 진영의 반대 데모 등도 이 같은 정서적 국민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정민 교수에게는 앞으로도 한국어와 일본어 2개국어로 집필하도록 부탁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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