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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읽은 『82년생 김지영』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 어머니와 누이, 처와 딸들 생각

서정민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종교사), 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필자가 한국어와 일본어 2개국어로 집필하였습니다. 일본어판도 함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베스트셀러 일본에도 선풍

拡大『82년생 김지영』 일본어 번역판= 츠쿠마서방 제공
최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인 책이다.

일본에도 가히 선풍적 인기이다. 유럽은 물론 베트남, 타이완 등 아시아에서도 널리 읽히는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벌써 16개국에서 번역 출판된 책이라고 한다. 이미 한국에서는 영화화도 결정이 된 모양이다.

한국어로 읽는 것이 더 편한 필자지만 먼저 일본어 책이 손에 들어왔다. 내용은 잔잔한 리얼리티이면서 때로는 필자가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로부터 허탈할 정도의 충격도 받았다. 그렇지, 그랬지, 우리의 어머니와 누이들과 아내가, 그래 그렇구나, 딸들이 그렇게 살고 있지.

한국 남성인 필자에게도 아무런 위화감이나 부정적 저항 없이 전해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보통의 것,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사실에 필자 스스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

작가 조남주가 지닌 스토리 전개 능력, 표현력의 탁월함은 크게 돋보인다. 그리고 필자가 일본어로 읽으면서 과연 원문인 한국어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를 묻지 않아도 될 만큼 사이토 마리코의 번역도 적절했다고 느꼈다.

이 글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의 줄거리나 결말은 언급하지 않겠다. 그것은 독자들의 관심과 독서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한국의 여성이 결혼을 해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이유

오래 전 여성학자들이 많이 참석한 한일관계의 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있었던 일이다. 컨퍼런스 중 쉬는 시간에 필자를 비롯해 몇몇이 둘러앉아 차를 마셨다. 한 일본 여성 학자가 말했다.

"조선시대가 그렇게 여성 차별 사회라고 알려졌지만, 그때는 물론 그 이후에도 한국 여성은 결혼해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지요? 그러고 보면, 한국 여성이 서양이나 근대 이후 일본의 여성보다 더 자존적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일본에서는 최근에야 결혼 후에도 자신의 '패밀리 네임'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어요. 남편 성을 따랐다가 이혼을 할 경우, 특히 전문직에서 활동하는 여성의 경우는 곤란한 경우가 참 많거든요."

몇 사람의 한일 학자들이 공감을 표하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에 흥미도 보였다.

拡大『82년생 김지영』한국어판 원본 민음사= 다음 책으로부터
그 때 필자는 평소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한국의 경우, 특히 조선시대 양반가(兩班家) 여성은 결혼을 해도 결코 남편의 가문에 편입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일생을 함께 살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살아도 생애를 마친 후에 선영(先塋)이라고 부르는 가족 묘지에 묻힐 때에는 결국 자신의 출신 가문 성씨를 묘비에 별도로 새겨 묻혀야 했다.

또한 그 부인이 유교적 덕목에 충실하여 남편을 위해 혹은 시부모를 위해 헌신적 희생을 다하고 이른바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경우도 있다. 그 때 국가에서는 '열녀'(烈女), 혹은 '효부'(孝婦)라는 상을 내리고 비(碑)를 세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영광은 모두 남편의 가문, 곧 시댁의 공이며 자랑이 된다.

그러나 만약, 그 부인이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으로 부르는, 관습과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가지라도 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출신 가문의 탓이 된다. 그리고 본가로 쫓겨나기 십상이다.

필자는 풍자적으로, 비판적 비유로 다시 설명했다. 여성을 제품으로 보면 효능이 좋은 점은 구매한 이의 이득이고, 혹시 결함이나 고장이 있을 시에는 원산지나 '메이커' 탓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덧붙였다. 냉정할 정도의 반품 처리 제도도 있었다고 비꼬았다.

가벼운 자유 토론에 참석했던 연구자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조선시대 여성 차별의 실상을 다시 생각하는 듯했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한국의 양반가 전통에서는 부모자식이나 형제자매가 아닐 경우, 남녀가 일곱 살이 되면 한 곳에 모이거나 함께 놀이를 할 수 없는 풍습이 있었다.

심지어 이런 극단적인 말도 공공연했다. 조선시대 한국 여성은 일생 단 세 사람의 남성만 공식적으로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어난 후에 부친을 만난다. 처음으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남성이다. 그 다음 결혼을 해서 만난 남편이 두 번째 남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낳으면 그가 세 번째 만날 수 있는 남성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나친 말일 수 있으나 당시의 형식적인 여성 억압의 현실을 잘 말해 준다.

수년 전 이슬람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이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사실로 세계적 뉴스가 된 적이 있다. 지금도 이슬람교 전통이 강한 나라들의 여성 옷차림은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이다. 특히 여성들의 의상인 '히잡'(hijab)이나 '차도르'(chador)', 브르카'(burqa) 등을 여성 차별과 억압의 상징으로 본다.

拡大조선시대 여인들의 외출, 장옷과 쓰개치마 등= 필자의 강의 자료 중에서

그러나 조선시대 한국의 양반 여성들도 만만치 않았다. '장옷'과 '쓰개치마'라는 의상을 입고 외출을 해야 했다. 전신과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특히 대낮은 절대 피하여 어둠이 내린 이후에나 겨우 나들이가 가능했다. 이른바 '내외법'(內外法)이라는 풍속이 그들을 지배했다.

한국 그리스도교와 여성 혁명

'남녀칠세부동석'과 '내외법'이라는 풍속은 한국 그리스도교 초기 전파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반면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교가 전래 된 후 여성 차별, 억압의 역사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왔다. 여성들의 교회 출입, 남성들과 함께 하는 예배,

그리고 '이화학당'을 비롯한 근대 여성교육 기관은 이들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선봉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가, 혹은 기존의 사회 세력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고 배척하는 이유로 사회 질서 문란 행위를 꼽았다.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초기 역사에서는 이른바 'ㄱ자 예배당'이라고 하는 독특한 교회당 건축 양식이 실재하였다. 즉 예배당 건물을 'ㄱ자'로 짓고, 한 쪽은 여성 좌석, 한 쪽은 남성 좌석으로 지정한다.

굽은 모서리에 설교 단상이 설치되어 양쪽의 예배 참석자들은 설교자의 모습은 볼 수 있으나 서로 간에는 대면할 수 없는 구조이다. 물론 별도의 문을 통해 출입함으로써 남녀 신도 간의 대면을 최대한 억제한 형태이다. 당시의 여성 억압의 사회 풍습과 그리스도교 집회의 현실적 필요를 적절히 융합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의 하나로 보인다.

拡大현재도 남아있는 ㄱ자 예배당, 전라도 금산교회 외부= 필자의 강의 자료 중에서

拡大현재도 남아있는 ㄱ자 예배당, 전라도 금산교회 내부= 필자의 강의 자료 중에서

한편 일본에서도 그리스도교 선교는 여성 차별 극복과 해방에 크게 기여한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근대 여성교육 역사에서 보여 준 그리스도교의 공헌을 가장 크게 평가할 수 있다.

별도의 측면으로, 가까운 일본의 여성 동료 학자의 견해를 빌리면, 일본에서의 본격적인 '자유 연애' 시대의 도래가 그리스도교 전파 이후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단지 제도와 형식의 문제를 떠나 자아 정체성의 문제이며 여성의 정신, 양심 등과 함께 깊은 정서적 내면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인간 자유의 면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일본에서나 한국에서 여성 차별과 억압의 해소, 여성 해방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그리스도교의 현재는 반성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교회 내부 분위기는 가장 낙후된 남녀 차별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그 개선의 여지가 산처럼 쌓여있는 실정이다.

한국을 휩쓰는 '미투(Me too)운동

수년 전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가 보수적 억압의 터널을 벗어 난 후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

2018년 1월 가장 보수적 조직 문화 중의 하나인 검찰 내부에서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검사 서지현은 수년 전 상사에게 당한 '성희롱'을 당당히 고발했고, 이를 여론화시켰다. 이에 힘입어 한국 사회에 암세포처럼 숨어있던 남성의 위력과 금력에 의한 여성 억압의 치부가 급속히 공개되기 시작했다.

정계, 재계, 문화계, 교육계, 체육계, 심지어 종교계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례가 당사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에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직위에서 물러나거나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도 다수이다.

현재도 이 운동은 진행형으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방향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은 아직도 한일간 역사적 현안으로 남아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한 '종군 위안부'의 문제도 오래 전 다른 차원의 '미투 운동'에서 출발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계추를 가운데로 가져오기 위해- 남녀 간의 공평한 미래

아직도 일본이든 한국이든 여성의 사회적 여건은 '유리 천장'이라고 부른다.

법적 제도나 형식적인 논리는 남녀차별이 거의 없다. 그러나 현실적인 장벽, 실제적인 운용 과정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차별이 존재한다. 실제로 여성들은 자신의 목표를 바라보면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듯 보이지만, 거기에 몇 겹의 유리 막이 가로막고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한편 남성들은 서서히 역차별을 이야기한다. 여성에 의한 반대의 억압, 주도권의 상실 등을 말하기 시작했다. 특히 취업이나 전문직의 임용 과정에서 남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여성 우대 정책 등을 펴기도 하는데, 이를 역차별 문제로 제기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역사를 볼 때, 아니 아직도 현실을 볼 때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여전하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균형과 공평의 상태일 것이다. 시계추를 맨 가운데로 가져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편향되었던 추를 우선 반대 편으로 옮겨가야 한다. 거기서 추동력을 받은 시계추가 좌우로 흔들리다가 마침내 정중앙에 위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한참 더 여성의 차별적, 억압적 상황을 정면으로 주목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성찰을 지속해야 할 때이다.

拡大서점에 가득 쌓여있는 『82년생 김지영』 일본어 번역판= 도쿄도 치요타구 삼성당 서점 진보쵸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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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者

서정민(徐正敏)

서정민(徐正敏)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종교사), 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대구 출생.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대학원 수료,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박사학위 취득.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연합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 신과대학 부학장 역임.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 초빙교수,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정년보장 교수. 아시아종교사, 한일기독교사, 한일관계사 전공. 유학시절을 포함하여 10년 이상 일본에 체류하며, 아시아의 종교, 문화, 사회, 정치, 특히 한일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일본기독교의 한국인식』(한울, 2000), 『한국교회의 역사』(살림, 2003), 『제중원과 초기 한국기독교』(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언더우드가 이야기』(살림, 2005), 『이동휘와 기독교』(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 『한국가톨릭의 역사』(살림, 2015) 이외, 한국어와 일본어 저서 50여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