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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위하여(3)

역사 속에서 1+1=2가 실재한 적은 없다

서정민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종교사), 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필자가 한국어와 일본어 2개국어로 집필하였습니다. 일본어판도 함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고아로 자란 청년의 계산

한 고아 소년이 있었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시설을 전전(轉轉)하며 자랐다.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가족이 있는 것이었다. 부모나 형제가 있는 친구들을 보면, 가슴이 휑하니 뚫린 것 같이 외롭고 부러웠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여 어느덧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그러던 무렵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소녀를 만났다.

그녀 역시 고아로 어렵게 자라난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금방 마음이 통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나중에 혹 짝을 만난다면 가족이 많은, 그래서 유복한 사람을 만나 시끌벅적 함께 살고 싶긴 하였지만, 그들 처지에 그런 조건의 상대를 만나고 맺어지기가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이 고아라는 것은 사회에 나와서도 따라붙는 또 다른 ‘마이너스’ 조건이었다.

고아 청년은 어느 날 결심하고 그 처녀에게 편지를 썼다.

“이제부터 가능하다면 나는 그대의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하여 그대가 평생을 그리워했을 아버지도 되겠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보너스로 그대가 한 사람만 있었으면 했을 오빠도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물론 앞으로 그대가 낳을 아들과 딸의 아빠도 되고 싶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고아 처녀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신이 지금껏 꿈꾸어 온 가족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장을 썼다.

“그럼 저도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되어 드리겠습니다. 물론 당신의 제일가는 아내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평생을 그리워했을 어머니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역시 보너스로 하나만 있었으면 했을 고운 누이도 되겠습니다. 물론 당신의 아들, 딸의 좋은 엄마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실화이다.

고아 소년 고독 1과 고아 소녀 고독 1이 합치면, 보통 1+1=2 가 공식임으로, 고독 2가 그 정답이 되는 것으로 알기 쉽다. 일반적으로 천애의 고아 둘이 결혼을 하면 더욱 외로워 못산다는 말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앞의 둘은 달랐다. 고독 1 더하기 또 다른 고독 1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산을 해보니, 남편 하나, 아내 하나, 어머니 하나, 아버지 하나, 오라버니 하나, 여동생 하나, 외로운 김에 아들 딸 각각 둘씩 넷을 낳았는데, 아이들 넷, 결국 가족 열이 되었다. 여기서는 계산이 ‘1+1=10’이 된 것이다. 누가 이 계산을 틀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단지 ‘1+1은 2가 될 경향성’이 클지는 몰라도, 우리들 삶과 꿈을 포괄하고 관통하는, 사람다운 삶의 가치적 내재 속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해답과 융통성이 있을 수 있다.

필자는 멋진 건축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건축 작품의 감상은 기분을 좋게 한다. 그러나 화려하고 고급스런 건축보다는 참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건축이 좋다. 대부분 진정한 건축가는 과학자이며 인문학자이며 예술가라고 여긴다. 필자가 좋아하는 일본의 현역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의 작품 중 히메지(姫路)문학관(1992년)= 히메지문학관 홈페이지로부터

1+1=2, 다른 답은 없을까

일본 TV아사히(朝日)방송에 ‘비포 엔 에프터’(before and after)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아주 오래되고 낡은 집을 대개 깊은 ‘휴머니즘’을 지닌 ‘리 모델링’(remodeling)전문 건축가가 맡아 전혀 다른 공간으로 재창조해 나가는 과정을 방송한다.

건축은 분명 건축이니, 공간의 제약, 기본적 구조의 조건 등에 입각 엄밀한 계산을 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백미는,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건축가의 가슴이 깃들여지는 과정이다.

연로한 부모님이 계실 경우 그 분들의 건강 상태, 평생 즐겨 온 취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등등을 새 집의 공간 설계에 다 감안한다.

혹 장애가 있는 가족이 있을 경우에는 그에게 집안에서 보장되는 최대한의 자유를 위해 공간과 시설을 계획한다. 그리고 어린이는 어린이, 학생은 학생, 주부는 주부의 역할과 행동 반경, 무엇보다 그들의 행복이라는 조건이 공간 효율을 압도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건축이다.

‘수학적 계산’과 ‘인문학적 계산’이 잘 어우러진 해답이 도출되면,단지 편리하고 튼튼하고 새롭게 된 집만이 아니라 가족을 이어 하나로 합하는 공간으로 재탄생 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그 공간을 새로 만난 가족들은 눈물 어린 감동으로 행복해한다. 거기에 분명 인문학적 계산법이 수긍되어 있다.

완벽한 직각 삼각형은 실제로는 없다

피카타고라스(Pythagoras) 정리= 필자의 강의 자료로부터

역사학의 방법론을 사용하는 종교 강의에서, 필자는 우선 역사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한다.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면 가장 좋을까 하는 설명에는 간혹 수학 이야기를 한다. ‘피타고라스(Pythagoras)정리’이다.

“여기 완벽한 직각 삼각형이 있다고 가정(假定)하자. 그러면, 직각변의 제곱에 또 다른 직각변의 제곱을 더한 값은 빗변의 제곱의 값과 일치한다. 그런데 이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만고의 수학적 진리임에 분명하지만, 역사 안에서 실제로는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우리가 완벽한 직각삼각형을 그리거나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개 여기까지 설명하면, 클래스는 조용한 가운데, “그런가? 정말 그런가? 잘 만들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분위기가 된다. 그리고 가끔 학생 중에는, 정밀한 컴퓨터로 그리면... 하다가는, 자기모순을 금방 알아차리고 말을 멈추기도 한다.

그러면 필자는 우리들 머릿속에서는 완벽한 직각 삼각형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상상과 가정과 이상적 개념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근사치는, 거기에 비슷하게는 얼마든지 그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완벽한 직각삼각형, 그 자체는 실재하지 않는다.

다시 1+1에서 1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역시 1+1=2로 간다. 그리고 과연 1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참을 토론한다. ‘하나’라는 것이 어떤 구성, 단위, 범위, 주체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하나’도 여러 가지여서, 역사 안에는 1+1=2가 실제로 성립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냥 개념으로 ‘하나’에 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의 클래스는 대체로 긍정한다. 그래서 역사는 수학과 가장 먼 곳에, 그리고 역사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그렇게 부족하고, 불완전한 채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어떤 학생은 빙긋이 웃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수학이 싫었구나... “ 얼마나 귀여운 응용인가.

역사는 우리의 실존 자체이거나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 그 역사적 실재와 가장 먼 곳의 진리가 수학적 진리라고 일러 주면 바로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어서 자신이 수학을 싫어했다는 것이다. 수학을 싫어한 그는 그 정도의 ‘메타포’(metaphor)를 잘 응용하여 인문학 공부를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빙긋이 웃어 준다. 정말 그렇다고.

전쟁의 소식과 인문학

필자는 강력한 반전주의자이다.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도 전쟁은 안 된다. 혹 ‘방어전쟁’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마저 어떻게 하든 피할 수 있으면 피하야 하는 것이다.

전쟁은 인류가 저질러 온 죄악 중 가장 무거운 죄악이다. 멀리는 그만두고, 가까이 일본과 한국의 역사에서만 해도 전쟁은 가장 참혹한 역사적 정황과 후유증을 낳았음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쟁에서는 네 편 내 편을 불문하고,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이 극도의 희생을 치른다. 오히려 전쟁을 주도하고 그것을 실행한 이들보다는 간절히 그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먼저 처절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곧 전쟁은 다수 민중들의 ‘피의 강’이다.

인문학적 사고는 전쟁을 피하는 생각에 가장 근접한다. 한 지역, 나라의 전쟁이 휩쓸고 지나 간 시공간에는 역사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양의 인문학적 성찰이 따른다. 문학이 써지고, 역사가 기록되며, 구구절절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론은 전쟁은 안 된다는 것이 인문학의 성찰과 그 역사이다. 진정한 인문학적 계산은, 적든 많든 사람들이 희생되어서 얻어지고 도달하는 가치는 결국 손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950년 한국전쟁의 참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로부터

한반도 통일의 값

최근 뉴스에 회자되기를,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 최소한의 추산으로 약 일백만 명이 희생되면 통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그야말로 철저히 반(反)인문학적 사고이다.

필자는 아무리 통일이 한국 민족의 ‘꿈에도 소원’이고, 귀중한 ‘가치’라고 해도, 일백만 명의 목숨을 값으로 주고 산다는 것은 멍청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나머지 7천만이 좋기 위해 일백만 명이 희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적(敵) 인문학적 사고’이다.

전쟁에 이기는 것보다 전쟁을 막는 것이 인문학이다. 전쟁 이후 그 참상을 성찰하고, 그것은 나쁘다고 하는 것도 인문학의 역사이지만, 그것보다는 전쟁을 막을 가치를, 그런 정신을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전쟁에서 이길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죽이고 전쟁을 막아야 한다. 지도자의 자존심이나 정치가의 위신, 군인의 명예보다 소중한 것이 다수 민중의 목숨이며, 고귀한 생존임을 일깨우는 것이 인문학적 가치이다.

전쟁의 소문, 전쟁의 조짐이 흉흉한 중에 인문학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전쟁에 이길 생각을 하는 이들은 하루속히 전쟁을 막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응징을 생각하는 이들은 응징할 필요가 없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못하면 우리가 해야 한다.

인문학과 예외적 존재, ‘고문관’(군대 병영의 속어로 열외)

가끔 필자는 장애인으로서 특별한 대우를 받을 때가 있다. 사실 그 것이 ‘예외’(exception)로 인정 받는 것인데, 원래 예외 취급을 받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예외 취급이 아니라 대우를 받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예외와 대우의 관계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예외적 존재, 소수자, ‘마이너리티’(minority)가 어떻게 취급 받는지로, 한 나라, 한 사회, 한 공동체의 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계속, 이를 악물며 예외가 아니고자 하는 삶을 살았다. 기를 쓰고 노력하여 최소한 전체의 대오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목표가 있었다. 그것이 아니고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불리한 조건의 사람이 어느 정도 사람 취급을 받고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자명하였다.

필자 역시 점점 달라지기 시작은 했지만, 누가 좀 도와주려고 해도 그것이 동정이 아닐까 의심하는 경우도 있고, 같은 값이면 자기 힘으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하나의 가치처럼 여겨졌었다.

특히 장애를 지닌 이들이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거나 목표를 이루는 가장 중심적인 방식으로 ‘대오이탈불가원칙’이 각광을 받았다. 물론 필자 역시 예외 없이 그 원칙 하에서 ‘인간 극장’을 연출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아주 좋은 측면도 있다. 불리한 조건을 가진 이가 좀 더 굳건해 지고 독립심도 강해지며 때로는 감동적인 용기를 보이기도 한다.

징병제인 한국에서도 필자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군대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젊은 시절 비교적 긴 군대생활을 한 친구들은 돌아가며, 끊임없이 필자에게 군대생활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그건 친구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필자의 제자들까지도 군대를 다녀온 이들은 예외 없이 그랬다.

거기에는 ‘아주 좋은 이유’와 좀 ‘괘씸한 이유’가 함께 있다.

그런 극단적 경험을 하지 못한 필자를 배려하여 되도록 상세히 그 체험을 전하여 필자에게 간접적이나마 그 이해를 더하여 주려는 의도도 있다.

한편으로는 다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끼리는 지나치게 과장을 한다든가, 속된 말로 ‘애교 있는 사기’를 좀 쳐서 그 경험을 말하면 바로 들통이 날 터인데, 경험이 없는 필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뻥’이 통할 수 있다는 이유이다.

이것은 아마 한국의 수많은 여자 친구들이 끝없이 남자 친구들의 군대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특히 군대에서 축구, 혹은 족구 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로 정평이 나 있는 것과 맥락이 통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 중에 가장 흥미를 끄는 이야기는 대개 어느 부대에나 있을 법한 ‘고문관’, 즉 ‘열외’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와서 반추하면, 군대라는 통일적 단체 조직에서 가장 ‘인문학적 존재’가 그들 ‘고문관’이나 ‘열외’가 아닐까 한다. 그들이 없으면 군대가 얼마나 삭막한 조직이 될까?

이렇게 말하면, 필자의 친구들은 역시 그대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무척 낭만적인 생각을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평상의 군대에서나 ‘고문관’, 즉 ‘열외’가 간혹 재미있게 회자되는 것이지, 전시나 극렬한 훈련 중에는 그들 때문에 전 소대가 절대 절명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말이다, 어떻든 인문학은 다수의 통일적 사고나 조직, 조건, 일률적 성과나 정답 말고, 좀 튀고, 얼토당토않은 것이다. 아주 예외적인 ‘고문관’이나 ‘열외’적 존재가 더 인문학적 가치와 잘 통한다는 필자의 생각은 굳건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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