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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한마디 말이 한일 관계를 꼬이게 한다

언어소통과 정치외교 문제

서정민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종교사), 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필자가 한국어와 일본어 2개국어로 집필하였습니다. 일본어판도 함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부정문이 없는 언어를 쓰는 부족

拡大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부근의 네이티브 아메리칸 유적지에 있는 인디언 추장의 목상= 필자 제공
필자는 언어학자가 아니다. 다만 일상적으로 한일 간 이중언어로 활동하는 입장에서 언어 소통 문제에는 남다른 관심이 있다.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대학 시절 타 학부 과목 청강으로 언어학 관련 강의를 들을 때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남아있다 (아내가 대학시절 소속되었던 학부의 클래스로 다른 목적이 수반되었을지도 모르는 청강이었지만). 저명한 언어학 교수의 강의였다.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s, 속칭 아메리카 인디언) 어느 부족의 언어 중에는 부정문, 즉 ‘아니’라는 표현이 없는 언어가 있다. 그 언어에서 부정의 뜻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라는 질문이 있었다.

어리둥절한 우리에게 노 언어학자는 이내 답해주었다.

“나는 결코 미남이 아니다”는, “내가 미남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참 좋을 텐데.”

즉 부정의 표현은 가정법을 이용하여 뜻을 전한다는 특이한 언어에 대한 강의였다.

물론 필자가 그런 언어를 직접 조사해 본 적은 없지만 언어학 청강 시간에 들은 내용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아마 짐작하건대, 부정 표현이 없는 언어를 사용한 부족은 나름 대단히 품격 있는 인간 관계 소통을 중시하는 문화를 지닌 이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비록 부정문이 존재하는 언어권에서도 되도록이면 부정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좀…”

필자가 처음 일본에 유학을 왔을 때이다. 같은 대학에 먼저 유학 와서 일본 생활이 필자보다 앞선 친구가 일본 생활의 경험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그가 유학을 온 얼마 후 동급생 여학생에게 마음이 끌려 데이트 신청을 했단다.

“오늘 가능하시면, 저와 같이 식사하고 영화 한 편 보시겠습니까?”

그야말로 전형적인 데이트 프로포즈이다.

돌아 온 대답은,

“오늘은 좀…”

그 친구는 우선 대단히 만족하고 즐거웠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프로포즈가 통했다고 생각했단다. 자신의 프로포즈 자체는 좋은데, 시간상 오늘은 어렵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친구는 그 다음날도 또 며칠 후에도 같은 수작을 걸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오늘도 좀…” 이거나, “사실은 좀…”이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그 동급생의 의사가 ‘아니’라는 뜻, 데이트 신청에 대한 거절이었음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즉 데이트 프로포즈를 완곡히 거절하는 의사 표현이, 이른바 ‘생략법’의 언어로 표현된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拡大KERIM/Shutterstock.com

이상의 에피소드에 의하면, 부정의 뜻을 전하는 방식으로는 앞서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어느 부족의 가정법도 있지만, 일본어에 빈번한 생략적 표현으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 이야기를 들려 준 친구는 그것이 한국어를 쓰는 젊은이들의 대화였다면, 바로 ‘예스’(Yes)인가, ‘노’(No)인가가 직접적으로 표현되었을 거라고 했다. 필자 역시 동의하였다.

데이트를 신청하는 상대에게 되도록 빠르게, 그리고 분명히 긍정이냐 부정이냐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답할 확률이 한국어 사용권에서 훨씬 높을 것이다. 지금은 일본어권의 문화적 분위기도 많아 달라진 것이 확실하지만, 필자가 처음 유학을 온 30여 년 전의 일본, 특히 여성들의 언어는 완곡한 간접적 표현의 경향이 강했다고 생각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생략법에 의한 의사 표현이었다.

한국의 옛 어법, 조선시대 양반들의 언어

그러나 한국어도 옛 시대, 특히 엘리트 계층의 언어에는 직접적 표현이 적다. 즉각적 표현은 오히려 상스럽고 저급한 것으로 여겼다. 수준 높은 대화는 철저하게 비유를 사용하거나 해학과 풍자를 섞어서 썼다. 때로는 노래 형식을 빌리기도 했다.

고려가 망하고 새로운 왕조 조선이 세워지는 시기였다. 고려 왕조에 충성을 다하는 중신 정몽주(鄭夢周, 1337-1392)를 조선 건국의 주도 세력의 하나로 후에 세 번째 왕위에 오르는 이방원(李芳遠, 1367-1422)이 설득하는 시조(時調)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현대어 표기, 「何如歌」<하여가>, 출전 『靑丘永言』)

여기에 대해, 정몽주는 자신의 곧은 지조를 다음과 같은 시조로 답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현대어 표기, 「丹心歌」<단심가>, 출전『靑丘永言』)

이 대화에는 ‘예스’도, ‘노’도 없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권고와 목숨을 건 거부가 함축되어 있는 대화이다. 결국 정몽주는 이방원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이 시대 또 다른 에피소드가 전한다. 조선의 첫 번째 왕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와 그의 책사(策士) 무학(無學, 1327-1405)과의 유명한 일화이다.

拡大경복궁의 강녕전= 경복궁 관리소 HP에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나서 경복궁에서 축하연회를 베풀었다. 한창 취흥(醉興)이 무르익어갈 무렵, 담소(談笑)를 나누다가 태조가 옆에 있는 왕사(王師) 무학에게 불쑥 한 가지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대사! 오늘만은 파탈(擺脫)하고 피차(彼此) 흉허물 없이 누가 농담을 잘 하는지 내기를 해 봅시다 그려.’ 어안이 벙벙한 무학대사가 엉겁결에 응답했다. ‘성은이 망극할 뿐이옵니다.’ 그러자 대뜸 태조가 농을 걸었다. ‘지금 대사의 얼굴을 요모조모로 뜯어보니 흡사 멧돼지같이 생겼구려.’ 이 말이 떨어지자 주석(酒席)은 온통 웃음바다를 이뤘다. 이윽고 무학대사가 정중하게 입을 떼었다. ‘소승이 뵙기에는 태왕(太王) 께서는 꼭 부처님을 빼 닮으셨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태조가 웃음을 거두고 정색을 하며 물었다. ‘농담을 하기로 했는데 그 무슨 말씀이오? 과인은 대사를 멧돼지에 비유했거늘, 어찌하여 부처님이라 하오? 오늘밤은 어떤 욕을 해도 괜찮다고 하지 않았소?’ 이에 무학은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고 나서 천연덕스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무릇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온 만물이 부처님같이 보이지만 돼지의 눈으로 보면 다 돼지같이 보이는 법이로소이다.’”(한글 현대어 표기, 출전 『釋王寺記』)

결국 은근하고 차원 높은 비유로 무학은 왕의 공격에 멋진 응수를 한 것이다. 이는 조선 양반의 유머와 해학, 풍자적 언어의 전통을 말할 때 자주 거론되는 사례이기도 하다.

拡大경복궁 경회루= 경복궁 관리소 HP에서

욕설에 대한 단견

언어권에 따라 욕설의 빈도, 종류, 경향 등이 따로 있을 것이다. 절대적 비교는 아닌 주관적 의견이지만, 한국어에는 다양한 형태의 욕, 거기에 해당하는 언어 표현이 다른 언어권에 비해 많다고 생각한다. 언어학자에 따라서는 욕으로 볼 수 있는 표현이 풍부할수록 그 언어권의 역사적 유구함과 문화적 다양성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하는 것을 보았다. 일리 있는 부분도 있을지 모르나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욕은 되도록 지양해야 하고 더구나 특정한 상대를 두고 내뱉는 욕설은 인간관계의 파괴적 행위이자 폭력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욕설의 일상화가 진행되는 조짐이 있다. 그런데 욕설은 단지 언어 표현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표정, 제스처, 무절제한 행위, 태도 등등으로도 표출된다.

더구나 그것이 어떤 차별적 인식, 선입감, 이데올로기로 미리 규정되어 일방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대표적으로 인종 차별, 출신 지역 차별, 민족적 감정, 사상적 구분에 의거한 적대적 언어, 행위, 표현 등은 어떤 직접적 폭력 이상으로 심대한 가학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특히 남북 분단 상황의 한국 사회에서 자주 사용되는 ‘빨갱이’라는 표현, 즉 ‘좌익 세력’이나 소위 이데올로기적 진보 진영을 표현하는 속된 호칭은, 직접적 욕설은 아니지만 남한 내부에서도 진영을 나누고 상호 공세적인 편가르기를 하는 폭력적 언어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의 대세를 장악한 사이버 공간, SNS 상의 욕설, 곧 언어 폭력의 실상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얼굴과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가상공간, 화자(話者)가 직접 노출되지 않는 상태에서 자행되는 수많은 욕설은 당하는 이에 대한 인격적 살인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연속적으로 ‘아이돌’ 출신 유명 연예인이 이른바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셜리, 그룹 ‘카라’의 멤버 구하라 등이 그들이다.

이는 언어 표현이 단순히 인간 관계의 소통 문제, 정서적 영향의 차원을 넘어 심대한 직접적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욕설이나, 악플의 문제는 한국이나, 일본으로 한정된 지역적 문제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의 인간 관계 소통의 가장 큰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拡大Lightspring/Shutterstock.com

정치 외교와 언어 문제

拡大일본 외무성= 외무성 FB에서
정치와 외교의 가장 첨예한 현장에는 언어 표현의 문제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 현장에도 난무하는 언어 대립과 갈등, 표현의 의미 해석을 둔 논쟁이 끊임이 없다. 더구나 이것이 자국의 정치를 넘어 외교 부분으로 이어지면 그 예민한 대치는 더욱 치열하다.

한일 간의 현안 문제에 있어서도, 물론 근본적으로 인식의 차이나 정책 방향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외교적 언어가 상호 어떻게 교차되고 소통되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외교적 수사로서의 언어 선택, 통역의 역할, 때로는 외교 의전의 레벨 등이 근본적 정책이나 입장 차이보다 앞서 거론되기도 한다. 거기에는 단순한 언어 표현 이외에도 행동, 표정, 의사 교환의 방식, 의전 형식 등등도 함께 논의된다.

예를 들어 한일 간의 외교적 현안이 첨예했을 때, 한국의 여론은 일본 정치 외교가들이 사용한 언어뿐만 아니라, 한국 외교관을 향한 일본 외상의 표정, 소통 방식, 외교 대표단에 대한 형식적 예우 등이 먼저 거론되기도 했다. 그에 따른 긍정, 부정의 파급은 생각보다 민감하고 반향은 크다.

이를 통해 보면, 국내 정치이건 국제적 외교이건 그 출발은 언어 표현을 시작으로 작은 소통 행위로부터의 과정인 것을 무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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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者

서정민

서정민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종교사), 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대구 출생.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대학원 수료,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박사학위 취득.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연합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 신과대학 부학장 역임.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 초빙교수,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정년보장 교수. 아시아종교사, 한일기독교사, 한일관계사 전공. 유학시절을 포함하여 10년 이상 일본에 체류하며, 아시아의 종교, 문화, 사회, 정치, 특히 한일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일본기독교의 한국인식』(한울, 2000), 『한국교회의 역사』(살림, 2003), 『제중원과 초기 한국기독교』(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언더우드가 이야기』(살림, 2005), 『이동휘와 기독교』(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 『한국가톨릭의 역사』(살림, 2015) 이외, 한국어와 일본어 저서 50여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