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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코비드 19’ 대책에는 ‘세월호 사건’의 교훈이 있다

그때로부터6년문재인정부는4.16세월호사건을잊지 않음으로4.15총선에서승리

서정민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종교사), 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この記事は『韓国コロナ対策には「セウォル号事件」の教訓があった』の韓国語版です。

필자는 언젠가 하도 깊은 충격 때문에 한국 현대사는 4.16 세월호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야 할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일본 현대를 「3.11 동일본대지진 이전 이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는 맥락과도 괘를 같이 한다.

여기에 이의를 가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세월호 사건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하나의 해난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4.16 세월호는 우리가 겪었던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이 있다.

긴 역사는 차치하고 식민지 압제와 분단, 전쟁, 민중학살, 군사독재, 민주항쟁 등등 우리가 겪어 온 비탄의 역사, 그 트라우마는 어느 하나 쉽게 가늠할 수 없는 한으로 쌓였다. 그렇지만그것들 대부분은 우리들에게 불가항력의 운명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는 달랐다.

국가가 제대로만 작동했다면, 높고 낮고 간에 처처곳곳의 책임자들이 마땅한 본연에만 성실했다면… 화면에 비추이는, 우리들 눈앞에서, 그 푸르고 창창한 것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그렇게 처절히 죽어가지 않았을 것이라는.절절하여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고통을 전 국민이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트라우마이다.

拡大침몰 당시의 세월호. 이로부터 약 25분 후 뱃머리만 남기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부근 해상, 현지 주민 제공

도대체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권력과 최고책임자는 어떤 역할과 기능, 사명이 있는가를 되물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6년이나 지났지만, 그때의 그 무능하고, 악하며, 최소한의 책임도 방기한 세력을 이어받은 잔당들에 의해, 우리는 아직 우리들의 청청한 이이들이 왜 우리들 눈앞에서 그토록 허망하게 죽어가야 했는가라는 진상을 다 알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했으며, 무슨,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다 알지 못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코비드 19’ 대책

그러나 또 다른 세월호사건 이상일 수 있는, 물론 차원은 다르지만, 코비드 19의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았다.

국가에 지워진 책임과 그 책임자의 자세와 역할이 무엇인지도 보았다.

초기 중국으로부터 코비드 19가 시작되어 한국에도 감염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중국과의 인적 교류를 차단하지 않았다. 철저한 검역, 검진 시스템을 갖추고 이에 대비했다.

물론 큰 어려움도 있었다. 신종교의 하나인 ‘신천지’라는 집단의 집단감염과 그로 인한 파급은 한때 감염폭발의 위기로까지 치달았다. 특히 그들 종교집단의 비협조로 정부의 적극적 방역 정책에 난관이 컸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미 지난 정권에서의 세월호 사건을 아픈 기억으로 되살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 정부는 재난 컨트롤 타워를 제대로 작동시켰고, 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 안전을 제일 모토로 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최고 수준의 진단 기법, 감염자 관리, 의료붕괴를 막기 위한 대처 방안을 시행했다.

일단은 크게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拡大코비드 19의 상황에 대해 기자 브리핑에 나선 국가방역 총책임자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2020년 4월 17일 동 질병관리본부 제공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감염자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감염에 의한 사망률도 극히 낮은 상태로 조절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 방역 시스템과 감염 경로 제한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이는 또한 세계 각국의 지지와 칭찬, 때로는 협조 요구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월호로 인해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이 나라가, 지금은 코비드 19 상황에서 어떤 존중과 부러움을 온 세계로부터 사고 있는지도 보았다.

여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겠으나, 세월호의 아픈 경험을 반복하지 않고, 국가의 역할이 무언지에 대한 성찰을 놓치지 않은 현 정부의 자세가 매우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4.15 총선거는 4.16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拡大한국 페이스 북 상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는 세월호 관련 일러스트
4.15 총선의 결과는 4.16 세월호 제6 주년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질문이며, 응답이다.

4.16의 숨막히는 고통, 촛불혁명이라는 요원의 불길,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민주시민의 열망,
그리고 주저 말고, 적폐, 구습, 악덕 기득권을 확실히 청산해 나가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4.15 선거 혁명은 6년 전 4.16 세월호에서 비롯되었다.

그 사실을, 진 자도, 이긴 자도 잊지 말기 바란다.

(일본어판 기사 『韓国コロナ対策には「セウォル号事件」の教訓があった』도 함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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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者

서정민

서정민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종교사), 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대구 출생.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대학원 수료,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박사학위 취득.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연합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 신과대학 부학장 역임.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 초빙교수,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정년보장 교수. 아시아종교사, 한일기독교사, 한일관계사 전공. 유학시절을 포함하여 10년 이상 일본에 체류하며, 아시아의 종교, 문화, 사회, 정치, 특히 한일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일본기독교의 한국인식』(한울, 2000), 『한국교회의 역사』(살림, 2003), 『제중원과 초기 한국기독교』(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언더우드가 이야기』(살림, 2005), 『이동휘와 기독교』(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 『한국가톨릭의 역사』(살림, 2015) 이외, 한국어와 일본어 저서 50여 권.

※プロフィールは、論座に執筆した当時のものです